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르완다 내전 (문단 편집) == 르완다 학살 == [include(틀:제노사이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wanda genocide guns.jpg|width=100%]]}}}||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wanda genocide guns 2.jpg|width=100%]]}}} || ||<-2><#ffffff,#1f2023> {{{#000,#ddd 학살 말기 후투족 반군들이 버리고 간 마체테와 소총 더미. 소총 더미를 확인하는 병사는 [[자이르]] 군인이다.}}} || || '''발생 지역''' || [[파일:르완다 국기(1962-2001).svg|width=28]] [[르완다]] 전역 || || '''발생 기간''' || [[1994년]] [[4월 7일]] ~ [[7월 15일]] || || '''피해자''' || 50만 ~ 100만 || [clearfix] >친절했던 이웃집 아저씨와 학교 선생님, 목사님이 하루아침에 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어요. 저는 죽어라고 계속 달렸어요. 그들이 계속 뒤에서 제 이름을 불렀어요. >'''너를 꼭 죽이고 말겠다고요.''' >---- >- 르완다 대학살 생존자 인터뷰 中 >"처음에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언제고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죽더라도 잔인하게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칼에 맞아 죽느니 차라리 총에 맞아 죽기를 바라지요. 돈을 주고 죽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대개 총으로 죽여 달라고 말할 겁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오히려 예삿일이다 보니 절로 체념이 되더군요. 싸울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습니다. 키갈리 이웃 도시인 카시루에서만 투치족 4,000명이 살해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한데 모여 앉으라고 말하더군요. 수류탄을 터뜨려 한꺼번에 살해할 생각이었던 게지요. 사람들은 모여 앉았습니다." >---- >- 당시 대학살의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로랑 은콩골리가 필립 고레비치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